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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STUDIO
촛불과 식물을 그린 회화 앞에서 붓을 든 진풀의 작업 모습
JIN PUL · In the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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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의 조각을 식물 형태로 다시 구성한 Re:Pot
Re:Pot

2017 · Oil on linen, 시멘트 · 8 × 8 × 20 cm

ABOUT THE ARTIST

작은 빛과 여린 존재들에서 시작된, 서로의 안녕을 바라는 풍경.

진풀 JIN PUL

진풀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회화와 오브제를 통해 상실과 회복, 인간의 유한함과 서로를 지탱하는 마음을 탐구합니다.

촛불과 촛농, 마른 꽃, 눈을 견디는 나무처럼 작고 연약한 존재들에서 출발합니다. 물감을 얇게 쌓고 다시 닦아내는 과정을 거치며, 일상의 작은 파편이 우리 모두의 삶을 비추는 풍경이 되는 순간을 그립니다.

ARTIST NOTES

작업노트

불완전함과 흔적, 그 안의 빛

나의 작업은 꿈속의 한 장면에서 시작되었다. 회칠을 한 몸으로 극장 무대에 올라, 몸짓으로 그 더께를 털어내야 했던 꿈이다. 잊히지 않는 그 장면을 되짚으며 꿈과 기억, 무의식 속에 비친 나와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족쇄가 없지만 날아오르지 못하는 새, 온전한 움직임을 잃은 몸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흔들리는 존재의 모습이었다.

초기에는 직접 자세를 취해 촬영한 몸을 회화 속 석고 신체상으로 옮겼다. 이 형상은 나의 경험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인간이 지닌 보편적인 연약함과 유한함을 드러내는 매개가 되었다. 사회적 역할과 내면의 자아 사이에서 생기는 간극은 〈그림자 극장〉으로 이어졌다. 캔버스는 허구의 무대이면서, 현실에서 쉽게 드러낼 수 없는 감정과 내면의 진실이 모습을 얻는 공간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시선은 무의식의 안쪽에서 나를 둘러싼 일상과 타인의 삶으로 옮겨 갔다. 〈안녕 수집〉에서는 걱정과 불안을 구름으로 바꾸어 흘려보냈고, 〈밤의 말들〉에서는 아이의 말이 형상이 되고 그림이 다시 말이 되는 순간을 기록했다. 〈바닥 풍경〉에서는 길 위의 파편과 남겨진 흔적을 모아 감정의 지도를 만들었다. 붙잡아 두기 위한 기록은 조금씩, 지나간 시간과 감정을 다시 불러오는 일이 되었다.

해체한 회화의 조각을 식물의 형태로 다시 구성한 〈RePot〉은 이러한 관심을 화면 밖으로 이어 간 작업이다. 한때 하나의 그림이었던 조각들은 다른 몸을 얻어 다시 자라나는 모습이 된다. 내게 식물은 성장하는 생명인 동시에, 멈추거나 물러서는 시간에도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존재다. 자라지 않는 듯 보이는 순간에도 생은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은 〈자라나는 마음〉을 비롯한 회화로도 이어졌다.

서로의 곁에 선 몸들이 산의 능선처럼 겹쳐지는 〈산 사람들〉에서는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풍경을 생각했다. 각자의 모습을 지닌 존재들이 함께 서 있을 때, 하나의 몸으로는 만들 수 없는 형상이 나타난다. 내가 떠올리는 연대는 각자가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들이 곁을 내어 주고 지탱하는 모습에 가깝다.

〈살아낸 풍경〉은 2024년 11월 27일의 폭설에서 출발했다. 잎을 떨구지 못한 채 눈의 무게에 꺾인 나무들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삶의 위기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눈은 언젠가 녹아내릴 무게이기도 하다. 나는 상처 입은 형태 안에서 고난을 견디며 이어지는 생의 리듬을 보았다. 이 나무들을 그리는 일은 무언가를 이겨 낸 결과보다, 그 시간을 살아 내는 존재의 상태를 바라보는 일이다.

2023년 오래 바라보았던 반딧불 한 마리는 어둠 속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작은 빛으로 시선을 이끌었다. 전시에서 받은 꽃들이 시들고 마르며 바꾸어 가는 형태, 자신을 소모하면서 빛을 내는 초와 흘러내린 촛농도 작업의 풍경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여기서 반짝〉과 〈마음과 마음들〉에서 나는 사라짐과 빛남, 상실과 돌봄이 함께 머무는 장면을 그린다. 꽃을 건넨 마음과 타인의 아픔에 응답하는 마음이 또 다른 마음에 닿아, 조용히 이어지는 풍경을 상상한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그림을 만드는 방식도 달라졌다. 초기의 명료한 윤곽과 고정된 형상은 점차 흐려지고, 물감을 얇게 쌓았다가 다시 닦아내는 과정이 화면을 이룬다. 겹쳐진 색과 지워진 흔적 사이로 바탕의 결이 드러나고, 남겨진 빛과 여백이 감정의 미세한 층위를 만든다. 쌓기와 지우기를 반복하는 시간은 기억이 흐려지고 다시 떠오르는 방식, 무언가를 잃고도 살아가는 시간과 닮아 있다.

석고 신체상에서 해체된 회화의 조각, 눈을 견디는 나무와 여린 빛을 품은 풍경에 이르기까지, 작업의 중심에는 늘 불완전함과 흔적이 있다. 나는 꿈의 기록이나 주인을 잃은 사물, 일상의 작은 사건처럼 쉽게 지나칠 수 있는 파편에서 시작한다. 그것을 오래 바라보고 그리는 동안 개인의 기억은 나와 너, 우리 모두의 삶을 비추는 풍경으로 넓어진다. 상실을 지우기보다 그 흔적 곁에서 회복의 가능성을 살피고, 잊히는 존재와 서로의 안녕을 생각하며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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